천공의 성 라퓨타 포스터

천공의 성 라퓨타

天空の城ラピュタ
관람일 2025-12-25
국가 일본
장르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타나카 마유미, 요코자와 케이코

리뷰



*굉장히 주관적인 후기이자 감상이니 문제가 있다면 님말이 맞음.




나는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접했다. 아빠가 영화를 좋아해서 집에 모여있는 영화들만 한 바가지였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심심하면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고 또 보고 다시 보고 정말 징하게도 봤다. 주로 봤던 건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원령공주,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마녀 배달부 키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도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오무가 너무 무서워서 두 번은 못 봤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봤던 건 토토로와 라퓨타였다. 어렸을 땐 그저 마냥 동화 같은 모험담이라 즐겨봤던 것 같은데, 다 자라고 나서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니 그때는 마냥 어려서 몰랐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알아챌 수 있어서 두 배로 즐거웠다.


사실 납작한 시선으로만 보자면 라퓨타는 흔하디흔한 전개다. 주인공을 노리는 악당무리에게서 도망치며 모험을 시작하고 악당을 무찌른 뒤 행복해지는 이야기. 어렸을 적의 나는 라퓨타를 딱 저런 동화 같은 모험담으로만 여기고 좋아했다. 뭐, 고작해야 9살짜리였으니까. 이 나이를 먹고 다시 감상한 라퓨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평생 외쳐왔던 말을 동화적으로, 그리고 (아마도 당시의)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그다지 무겁지 않은 소녀와 소년의 모험담으로 그려낸 이야기처럼 보였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700년 전 멸망하기 전의 라퓨타를 비춘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번성한 천공의 도시. 하지만 현대에 와서 어째서인지 라퓨타는 멸망했고 그 기록이나 흔적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전설이나 동화처럼 여겨지는 이야기가 됐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그 라퓨타를 쫓는다. 파즈는 아버지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꿈. 도라 일당은 해적이라면 마땅히 쫓아야 한다던 부와 재물. 무스카는 자신의 권력과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위해. 정부군 또한 부와 권력을 목적으로.


라퓨타는 실재했다. 시타와 파즈가 막 라퓨타에 도달한 직후, 미야자키가 보여주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은 정말이지 멋지고 웅장하다. (애니메이터들이 얼마나 갈려 나갔을까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짐;) 풀과 이끼 나무뿌리가 내려앉고 주인을 잃은 외로운 로봇이 동물을 친구삼아 살아가고 있는 황폐한 유령도시는 기이할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롭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추구미(ㅠ)라고 느껴져서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그 아름답고 고요한 자연을 몇 분간 보여주다가 가차없이 터트려버린다. 시타와 파즈의 뒤를 이어 도착한 무스카의 정부군들이 닥치는 대로 라퓨타를 파괴하고 약탈하는 장면을 끊임없이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그릇된 욕망을 지닌 캐릭터들이 라퓨타에 도착하자마자 눈치 볼 것 없이 각자의 욕망 그대로 행동하고 있는 모습을 참… 추하게 잘 그려냈다는 생각을 했다. 하다하다 기둥에 붙은 금까지 벅벅 뜯어가고 있더라; 자연으로 뒤덮인 평화로운 공간이 인간에게 침해당하는 순간 처참하게 더럽혀진다는 걸 진짜 이를 악물고 묘사한 것 같았음.(ㅠㅠ)


사실 그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는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는 꾸준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외침에 공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주로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은 여성 캐릭터에게 치유, 감화, 평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이상적인 삶을. 주인공과 대립하는 남성 캐릭터에게(가끔은 여성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남성이더라.) 인간의 추악한 욕망, 자연을 기꺼이 파괴하며 발전해 나가는 기술, 폭력과 전쟁, 이기심을 투영한다. 비약이나 성별을 나누려는 다른 음침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미야자키 할아부지가 진짜 그렇게 연출을 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영화 몇 편만 떠올려도 답이 나온다. 그의 작품에서 본인만의 그럴듯한 사정 없이 욕망에 취해 침략이나 전쟁, 약탈을 일삼는 인물을 떠올리려 하면 십중팔구 대부분은 남성이 맞다. 하다못해 잠깐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는 역할이어도 그렇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국왕만 해도ㅋ)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리는 여성 빌런들은 대부분 주인공(소녀)에게 감화되어 나중에는 선한 역이 되거나, 원령공주의 에보시같이 약자들을 지키기 위해 악역이라 불릴만한 자리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오히려 거기에서도 진짜 빌런은 사슴 신 목을 돈벌이 하겠답시고 들고 튄 지코보나 다름없었으니까.(ㅋㅋ) 미야자키 하야오는 늘… 그렇긴 했지만, 특히나 옛날 작품에서는 거의 대놓고 저런 인물들을 내세워서 대립시키며 제발 전쟁 좀 그만하고 무식하게 싸우지 말고 자연 파괴도 그만하고 친환경적으로 다같이 동식물과 더불어 살자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참 좋음. 나도 인간이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친환경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그런걸까. 모쪼록 미야자키 하야오가 죽는 날까지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할아부지 화이팅!


말이 좀 샜는데 아무튼 다시 라퓨타 이야기로 돌아가서 저 공식을 대입해 보자면 하늘이(라퓨타) 아닌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 말하는 주인공 시타와 라퓨타를 손에 넣어 다시 한번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어 지배하고야 말겠다는 무스카가 대립한다. 공교롭게도 둘 다 멸망한 라퓨타 왕족의 후손이다. 정당한 권리와 능력을 지닌 두 인물을 대립시키다가 끝에서는 결국 늘 그랬듯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는 캐릭터인 무스카가 처절하게 패배한다. 무스카는 시력을 잃고 시타와 파즈가 함께 멸망시킨 라퓨타의 잔해와 함께 추락했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날개가 녹아 추락한 이카로스 같은 꼴이다. 영화 내에서 라퓨타가 지닌 의미를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어떤 이에겐 꿈이고 어떤 이에겐 부와 명예 권력. 말 그대로 욕망을 실현시켜줄 꿈같은 도시. 걸리버 여행기의 라퓨타. 유토피아. 바빌론. 엘도라도. 자연스레 그런 것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였으니까. 라퓨타의 말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아마도 병기였을)거대한 요새가 모두 추락해 바다로 수장된다. 그 거대한 도시를 지탱하고 있던 나무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평온한 자연만이 남아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을 곳으로 아주 멀리 멀어져갔다. 참 마음에 드는 엔딩이다.


너무 동화같이 틀에 박힌 권선징악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싫어할 수 없는 결말이다. 앞으로도 가끔 생각나면 종종 보게 되겠지. 아마 볼 때마다 오늘처럼 향수를 느끼고 한편으로는 참 좋은 이야기였다는 감상을 늘어놓을 것이다. 참, 추억이 한 바가지 묻어있는 영화를 같이 즐겁게 봐준 오리에게도 고맙다ㅎ 오랜만에 좋아하는 걸 가까운 사람과 나누면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져서 정말 즐거웠다!



+)깨알같이 묘사된 입체감 있는 캐릭터성도 좋았다. 가령 시타를 무스카에게 넘기고(자의는 아니었지만) 받아온 금화를 땅에 내던지려다가 자신이 처한 현실에(아마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처지겠지. 어린 광부가 벌면 얼마나 벌겠어ㅠ) 차마 던지지 못하고 손에 쥔 채로 터덜터덜 돌아가던 파즈의 모습이라든지ㅋㅋ


+) 지금이야 흔하지만 영화가 개봉한 연도를 생각하면 굉장히 진보적인 캐릭터, 대사, 연출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해적단 우두머리 도라가 특히. 호쾌하고 호전적인 노파라는 점도 그렇고, 여자는 배짱이라고 외치는 대사도 그렇고.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아했던 캐릭터라 오늘 다시 보면서도 도라가 제일 반가웠다. 내 멋있는 해적 할머니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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