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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
    관람일 2025-12-29
    국가 프랑스
    장르 드라마, 로맨스
    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아델 에넬, 노에미 메를랑

    리뷰


     오늘도 영화를 봤다. 근래에 들어 영상물 집중해서 오래 보는 게 힘들었는데 같이 떠들면서 봐주는 오리 덕에 하나씩 도장 깨기 하듯이 격파해나가고 있음. (고맙습니다.) 기력 문제로 좀 짧은 후기가 될 것 같지만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


     1. 영화의 첫인상은 와 이거 진짜 프랑스 영화 같다.(당연함. 프랑스 영화임.) 그리고 색을 정말 잘 쓴 것 같다- 였음. 영화의 시작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마리안느로 시작하는데 마리안느는 이때 짙푸른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갔을 때, 마리안느가 입고 있는 건 붉은 드레스다. 그리고 영화의 시작에서 마리안느가 입고 있었던 짙푸른 색의 드레스를 엘로이즈가 입고 있다. 뭐 푸른색이 우울함을 상징한다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니, 짙푸른 우울과 붉은 열정을 빗대어서 인물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음. 밀라노를 그리워하며 아주 오랫동안 웃음을 잃은 채 살아가던 엘로이즈의 어머니. 자신도 그렇게나 싫어했던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팔려 가듯 해치우는 결혼이라는 족쇄를 딸에게 물려주려는 그 또한 우울한 푸른색을 두르고 있다. 엘로이즈는 언니의 죽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팔려 가듯 결혼해야 한다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이 순간을 꿈꿔왔어요.” “죽음을요?” “달리기를요.” 이 대화만 봐도 엘로이즈가 얼마나 억압된 환경에서 숨 막히는 인생을 살아왔을지가 보임. 반면 마리안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화가로서 활동할 테니 결혼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고, 자신의 예술 활동에 열정을 지닌 화가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속이고 초상화를 완성하기까지, 엘로이즈는 푸른 드레스를 입는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고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엘로이즈는 초상화의 모델이 되기 위해 푸른 드레스가 아닌 녹색 드레스를 입는다. 녹색 또한 여러 상징을 담고 있다. 기본적으로 질투, 독 등 부정적인 것들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엘로이즈의 드레스는 성장이나 평화 희망 같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소소한 궁예를 했었음.



     2. 규칙. 관습. 이념. 마리안느가 몰래 완성한 초상화를 본 엘로이즈는 이것이 자신이냐 묻는다. 그리고 마리안느가 대답한다. 그림에는 규칙과 관습 그리고 이념이 있다고. 아마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잘 만들어진 상품처럼 팔려 가던 그 시대의 여성을 포장하기 위한 규칙, 관습, 이념이겠지. 엘로이즈의 초상화만 봐도 알 수 있다. 엘로이즈의 말마따나 생명력이나 존재감 따위는 없고, 온화하며 순진하게 미소 짓는 예쁘장할 뿐일 얼굴. 엘로이즈는 초상화에 그려진 자신을 부정한다. 동시에 결국 결혼을 위한 초상화를 그리는 일 또한 받아들였다. 이미 정해져 있는 자신의 운명에게서 달아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렇게나마 의문을 품고 부정하고 자신의 존재는 그렇지 않다고 외치는 엘로이즈의 용기가 좋았고 동시에 슬펐다.



     3.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 그냥 대놓고 엘로이스는 에우리디케고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라는 걸 떠먹여 준다. 그 뒤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맨 처음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하던 첫 장면이 떠올랐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찾기 위해 배를 타고 지옥의 강을 건넜던 것처럼, 마리안느 또한 강을 건너 엘로이즈에게 닿았다는 걸 생각하면 첫 장면부터가 복선이었구나 싶었음.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소피는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를 책망했고, 화가인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가 연인이 아닌 시인의 선택을 한 것이라 말했다. 두 사람이 오르페우스를 책망하거나 오르페우스의 관점에서 말할 때, 엘로이즈는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에게 뒤돌아보라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가만히 되짚어보면 애초부터 에우리디케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자신의 생존이 걸린 일에 대한 모든 권리가 오르페우스에게 달렸으니, 어쩌면 그 한 번만큼은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결정짓고 싶었던 엘로이즈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4. 저택의 주인인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집을 떠나있던 5일. 하녀의 앞치마를 입고 요리를 하는 아가씨. 앞치마를 벗고 수를 놓는 하녀. 그들에게 포도주를 따라 건네는 화가. 그들은 고작 한 명의 부재로 친구가 됐다.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고, 나들이를 가고, 곤란한 일을 돕는다. 자연스럽게 신분을 잊은 듯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 여자의 일상이 좋았다. 특히 영화 시작하고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음악이 깔리는 장면. 영화의 모든 장면이 내내 고요하다가 거기에서 갑자기 확 고조되면서 영화 제목 그대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나타나는 연출이 좋았음.



     5.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굴 보겠어요?“ 사실 이 장면만 볼 땐 이야 플러팅 죽인다. 이딴 감상만 하고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한 번 더 곱씹게 된 대사. 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당연히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계가 흘러나오는 그 긴 테이크 내내 마리안느의 시점처럼 엘로이즈의 얼굴만 보이기도 했고. 그래서 같이 본 오리가 마지막 장면에서 엘로이즈가 마리안느를 봤다 안 봤다로 되게 난리였다는 말을 했을 때도 이해를 못 했는데, 다시 인상 깊었던 장면 한 번씩 돌려 보다가 저 대사를 마주하고 어라…? 싶었음. 어떻게 보면 정말 마리안느를 봤지만 못 본 척하고 있다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니면 사계를 들으면서 추억 속의 마리안느를 보고 있다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님말구ㅎ. 암튼… 잔잔하고 조용해서 밤에 보기 좋은 영화였음. 즐거웠다!


  • 2025-10-11

    FF16

    Final Fantasy 16
    관람일 2025-10-11
    국가 일본
    장르 판타지
    감독 요시다 나오키
    출연 -

    리뷰



    굉장히 주관적인 후기이자 감상이니 문제가 있다면 님 말이 맞음.

    * 스포(FF14스포도있음), 불호도 있는 후기임. 불호 발언이 싫다면 뒤로가기 추천.


     


    게임을 한 직후, 트위터에 꽉 끼는 악플 같은 후기를 작성했었다. 그걸 다시 보니 그땐 게임 엔딩을 본 직후여서 많이 흥분했었나 봄; 근데… 솔직히 그럴만한 요소들이 있긴 했다. 아무튼 두 달쯤 흘렀으니 다시 돌이켜보면서 정리해 볼 것임. 나는 FF14 유저다. FF14의 스토리를 좋아했고 유저들끼리도 웬만하면 분쟁을 피하는 분위기가 좋아서 거의 유일하게 하는 온라인 게임이나 다름없다. FF14는 자극적인 요소가 적다. 따지자면 성적인 코드를 부각시킨다던가 유희거리로 삼지 않으려는 편인 게임이라는 거다. 뭐 특정 장소에 가면 바니걸을 연상시키는 옷을 입거나 폴댄스를 추는 NPC들이 보이긴 하지만 눈살을 찌푸릴만한 연출까지는 아님. 나는 그런 FF14의 프로듀서인 요시다 나오키를 믿고 FF16을 샀었다. 그리고 슬픈 일이 벌어졌다.



    1. FF16은 시작과 동시에 유저의 몰입도를 굉장히 사로잡고 들어간다. 보여줄 수 있는 자극적인 요소는 모두 사용한 느낌이었다. 전쟁터에서 파리목숨처럼 갈려 나가는 사람들. 잔혹한 폭력과 죽음의 묘사. 그리고 깜빡이도 안 켜고 튀어나오는 선정적인 장면. 그런데 그 정도가 뒤로 갈수록 좀 과해진다. 아무리 사람이 아닌 소환수의 모습이었다지만 피닉스가 이프리트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당하는… 그 장면을 참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야 속 알맹이는 고작 10살이나 겨우 넘었을까 싶은 어린아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보기 힘들어서 화면을 가렸더니 소리가 끔찍해서 헤드셋까지 벗고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그 장면이 끝나질 않더라. 솔직히 여기에서 탈주할 뻔했다. 하지만 내가 지른 돈이(…) 있었고 어쨌거나 스토리가 궁금했기에 결국 게임을 이어 나갔다.

    내가 게임을 큰 불쾌함 없이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건 ‘가루다 전‘까지였던 것 같다. 베네딕타라는 캐릭터에게 큰 매력을 느꼈고, 무엇보다 가루다 소환수 폼의 디자인이 정말 잘 뽑힌 데다가 성격까지 취향이었다. 전투씬 연출도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서 이때 게임에 대한 기대가 수직상승함. 그럼 이다음은? 안타깝게도 실망의 연속이었다.



    2. 중반부터 캐릭터들의 대사나 사고방식이 어째 좀 단순해졌다고 느꼈다. 클라우드, 질은 틀에 박힌 정직한 선인들이고 악역들은 틀에 박힌 개자식들이다. 주인공이 안 불어도 될 이야기를 줄줄 필리버스터 해서 악역들의 분노를 사거나, 누가 봐도 클리셰적인 뻔한 행동을 일삼아서 고구마 전개 못 보는 사람들은 이거 보다 뒷목 잡겠다 싶었다. (근데 난 선하고 우직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편이라 나쁘진 않았음.) 거기에 단순하고 유치한 대사들까지 합세해서 무겁고 어두운 게임의 분위기와 캐릭터들의 행동이 맞지 않다고 느낀 것, 더불어 설득력까지 부족하게 다가오니까 몰입이 좀 힘들었다. 인터뷰를 찾아보니 요시다가 일부러 성인이 즐길 수 있는 잔혹한 다크 판타지를 원해서 왕좌의 게임 같은 매체까지 참고해다가 이 게임을 만들었다고 함. 그와 동시에 대사는 일부러 그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중2병들이나 사용할 법한 것들을 차용했다고 했는데 이 두 설정이 충돌한 게 문제라고 봄.

    그런데 영어 더빙으로 바꾸니까 이런 감상은 확 줄어들더라. 일어 더빙은 인물들이 기껏해야 젠장, 망할! 이런 욕이나 할 착한 바보 같은 이미지였는데 영어 더빙으로 바꾸니까 클라우드가 욕도 잘만 하고 확 와일드해져서 세계관 분위기랑 훨씬! 정말 훨!씬!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너무 아쉬웠음ㅠ 이럴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영어 더빙으로 플레이했을 텐데.



    3. 대체 왜 그렇게 알몸을 좋아하는 걸까. 성인 게임이니 그럴 수 있다만, 그런 연출을 부담스러워하는 편인 내 주관적인 감상에서는 과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베네딕타는 리타이어한 뒤로도 틈만 나면 홀딱 벗은 알몸의 환영, 과거 회상, 혹은 알테마가 변한 나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직후 플레이어가 만나는 조력자는 사창가의 창부, 마담이다. 그곳에서는 메인 스토리와 하등 상관없는 쓰레기 같은 남자 때문에 죽은 어린 창부의 시신을 찾는 퀘스트를 진행해야 한다. 대체 왜 이걸 메인에 넣어둔 건지 의문이다. 전혀 판타지스러운 일도 아니고 이 게임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와 조금도 관련이 없을뿐더러 현실에서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범죄와 똑 닮아있는 이야기를 굳이 메인 스토리에 넣어둔 이유를 모르겠다. 게다가 주인공인 클라우드는 세계관 내에서 가축, 노예나 다름없이 천대받는 신분인데 사창가의 마담에게 신뢰의 증표를 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마주치는 병사, 상인 등 남성 NPC들의 부러움을 산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이 다음엔 곧장 환락가로 보내주더라. 주인공 일행은 매춘 업소에 숨는다. 일행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질이 불쾌함을 나타내니 중년 남성 캐릭터인 시드는 직원에게 돈주머니를 쥐여주며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주인공 일행이 대화를 나누는 컷신 내내 심심하면 여자의 신음소리가 효과음처럼 끼어든다. 매춘 업소. 어린 창부의 잔혹한 죽음. 이 모든 것들을 어떤 성별의 유희거리 그 이상 이하로도 아닌 소재로 사용했다는 게 진심으로 유감스러웠다. 비슷하게 오딘과 알테마의 독대 중, 알테마가 오딘 어머니의 모습(역시나 또 나체)으로 변한 컷씬에서도 불쾌함을 느꼈다. 50은 넘어 보이는 나체의 중년 남성이 20대 외형을 한 나체의 어머니의 다리를 끌어안고 허벅지에 뺨을 비비며 미소 짓는 장면을… 나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 심지어 메인 스토리에서는 오딘과 오딘의 어머니가 어떤 관계성,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언급조차 없다. 유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면 적어도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는 도중 힌트라도 건네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여기에서 이 게임에서는 남자도 공평하게 벗었는데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당연히 벗기야 벗었지. 그런데 저런 불쾌하고 포르노적인 연출로 소비되진 않았잖아.



    4. 같은 게임을 연출한 프로듀서의 게임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같은 타이틀을 공유하는 시리즈라서 그럴까. 후반부에서 모든 진상이 밝혀지면서부터는 어디서 비슷하게 본 듯한 장면과 설정들이 연상됐다. 고댓적부터 살아오던 자신의 동포들을 부활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알테마. 심지어 그 동포들은 새 세계를 창세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해서 그 계획의 발판(마더 크리스탈)이 됨. 여기에서 세밀한 설정들을 제외하고 큰 틀만 떠올리려니 종말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희생해서 야만신을 만들고 그 안에 잠든 채로 봉인 당했던 고대인들과, 동포들이 있던 완전한 그때로 돌아가겠다며 빛의 전사와 대립했던 어떤 12000년 묵은 고대인이 떠올랐다. 16의 알테마와 14의 고대인을 동일시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진상의 큰 틀이 닮아있다는 감상이 들어서 오~ 싶었다는 얘기다. 알테마의 최후에서도 그걸 느꼈다. 검을 던져서 빛과 함께 알테마의 배를 뻥 뚫어버리고 마지막 카운터는 맨주먹으로 얼굴에 죽빵을 꽂아 해치웠다는 부분. 14에서 어떤 고대인과 금발 스토커를 처치하던 연출이 떠올라서 이런 식의 리타이어 연출이 요시다 취향인 건가? 요시다의 로망인 건가?? 하는 감상이 들길래 좀 웃겼음ㅋㅋ. 그리고 죽빵은 나도 시원하긴 했어ㅋ.



    5. 16의 엔딩은 의문과 씁쓸함으로 가득했다. 정확히 누가 죽었고 살았다는 걸 보여주지 않았던 열린 결말. 연출만 보고 짐작했을 때, 클라우드는 죽은 게 확실한 것 같고… 조슈아는 살아남은 걸까 죽은 걸까. 마지막 쿠키영상같은 컷씬에 조슈아의 서명이 된 책이 있었던 걸 보면 살아남았다는 여지를 주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냥 조슈아라는 캐릭터가 좋았기에 살아남은 거라면 좋겠다. 장하잖아. 애가 그 어릴 적부터 얼마나 고생했는데. 사실 전혀 스포 없이 게임을 진행했어서 나는 정말 냅다 주인공을 죽여버리는… 엔딩이 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 씁쓸하게 느꼈던 듯. 마지막 결전을 치르기 전 거점에서 떠나던 클라우드 일행을 보고 오열하던 질이 자꾸만 떠올랐다. 질은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렇게 괴로워했던 걸까. 아무튼, 엔딩까지 다 보고 나서는 그냥… 클라우드가 너무 안타까웠다. 시드의 유지를 이어받아 어떻게든 나아가고자 발버둥 치며 이뤄냈던 그 모든 삶과 여정, 게다가 탄생과 그 존재조차 사실은 알테마의 계획으로 안배된 것들이었다니. 유저인 나로서도 내가 한 좃뺑이가 알테마를 손 안 대고 코 풀게 해준 일이었다고? 싶어서 배신감 들었는데 그 삶의 주인이었던 클라우드는ㅋ… 그 상황에서도 벅저벅저 나아가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하얗게 전부를 불태우고 쓸쓸하게 죽어갔다는 점까지 너무ㅋ 마음이 쓰였다. 어떻게 보면 기만스러운 엔딩이라고 느끼기도 했는데 파도에 떠밀려 온 클라우드가 달을 올려다보는 마지막 순간의 연출을 잘해서 그런가. 그 씁쓸한 여운이 참 오래 남아있는 게 좋았음. 그리고 클라이브가 마법, 베어러, 소환수, 도미넌트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세계를 만들어낸 것도 >파이널 판타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엔딩인 것 같았고.



    6. 액션과 전투 연출, 각기 다른 자연을 담은 필드가 좋다. 특히 사막이! 너무 아름다워서 좋았다. 소환수를 교체해 가며 싸우는 방식도 새로워서 좋았고. 내가 컨트롤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닌데 나중에 이것저것 손에 맞는 걸로 배치해서 입맛대로 사용하니까 너무 재밌더라. 그리고 공중전 연출이 꽤 나오는데 난 그게 특히 좋았음. 일단 멋있잖아…ㅋ. 다만 보스전의 경우엔 몰입한 상태에서 미션 완료 창을 띄우며 팡파레를 울리는 게 좀 미스였다고 생각함. 빡 집중해서 몰입도 수직상승하다가 갑자기 팡파레 터지면 몰입 뚝 끊기는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전투만 생각해도 나중에 심심하면 DLC 하나쯤은 사서 플레이해 볼 듯.



    결론 : 파판 시리즈는 익숙한 것들이 다른 세계관에서 전혀 다른 존재로 나오는 걸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인 것 같음. 비록 일부 연출 문제로 실망하긴 했지만…. 스토리 자체는 아주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함. 파판 시리즈 팬이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하다. 그런데 이제 선정적인 연출과 잔혹성, 성 인지 감수성에 구멍이 난 컨텐츠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나는 제법 힘들었어서.) 그런데 나처럼 14를 좋아해서 14의 느낌을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비추. 후기에 내내 썼지만 16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 어둡고 MSG 범벅이다. 요시다가 14에서 못한 거 16에 한풀이하는 느낌임.



  • 천공의 성 라퓨타

    天空の城ラピュタ
    관람일 2025-12-25
    국가 일본
    장르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타나카 마유미, 요코자와 케이코

    리뷰



    *굉장히 주관적인 후기이자 감상이니 문제가 있다면 님말이 맞음.




    나는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접했다. 아빠가 영화를 좋아해서 집에 모여있는 영화들만 한 바가지였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심심하면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고 또 보고 다시 보고 정말 징하게도 봤다. 주로 봤던 건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원령공주,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마녀 배달부 키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도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오무가 너무 무서워서 두 번은 못 봤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봤던 건 토토로와 라퓨타였다. 어렸을 땐 그저 마냥 동화 같은 모험담이라 즐겨봤던 것 같은데, 다 자라고 나서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니 그때는 마냥 어려서 몰랐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알아챌 수 있어서 두 배로 즐거웠다.


    사실 납작한 시선으로만 보자면 라퓨타는 흔하디흔한 전개다. 주인공을 노리는 악당무리에게서 도망치며 모험을 시작하고 악당을 무찌른 뒤 행복해지는 이야기. 어렸을 적의 나는 라퓨타를 딱 저런 동화 같은 모험담으로만 여기고 좋아했다. 뭐, 고작해야 9살짜리였으니까. 이 나이를 먹고 다시 감상한 라퓨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평생 외쳐왔던 말을 동화적으로, 그리고 (아마도 당시의)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그다지 무겁지 않은 소녀와 소년의 모험담으로 그려낸 이야기처럼 보였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700년 전 멸망하기 전의 라퓨타를 비춘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번성한 천공의 도시. 하지만 현대에 와서 어째서인지 라퓨타는 멸망했고 그 기록이나 흔적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전설이나 동화처럼 여겨지는 이야기가 됐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그 라퓨타를 쫓는다. 파즈는 아버지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꿈. 도라 일당은 해적이라면 마땅히 쫓아야 한다던 부와 재물. 무스카는 자신의 권력과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위해. 정부군 또한 부와 권력을 목적으로.


    라퓨타는 실재했다. 시타와 파즈가 막 라퓨타에 도달한 직후, 미야자키가 보여주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은 정말이지 멋지고 웅장하다. (애니메이터들이 얼마나 갈려 나갔을까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짐;) 풀과 이끼 나무뿌리가 내려앉고 주인을 잃은 외로운 로봇이 동물을 친구삼아 살아가고 있는 황폐한 유령도시는 기이할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롭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추구미(ㅠ)라고 느껴져서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그 아름답고 고요한 자연을 몇 분간 보여주다가 가차없이 터트려버린다. 시타와 파즈의 뒤를 이어 도착한 무스카의 정부군들이 닥치는 대로 라퓨타를 파괴하고 약탈하는 장면을 끊임없이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그릇된 욕망을 지닌 캐릭터들이 라퓨타에 도착하자마자 눈치 볼 것 없이 각자의 욕망 그대로 행동하고 있는 모습을 참… 추하게 잘 그려냈다는 생각을 했다. 하다하다 기둥에 붙은 금까지 벅벅 뜯어가고 있더라; 자연으로 뒤덮인 평화로운 공간이 인간에게 침해당하는 순간 처참하게 더럽혀진다는 걸 진짜 이를 악물고 묘사한 것 같았음.(ㅠㅠ)


    사실 그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는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는 꾸준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외침에 공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주로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은 여성 캐릭터에게 치유, 감화, 평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이상적인 삶을. 주인공과 대립하는 남성 캐릭터에게(가끔은 여성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남성이더라.) 인간의 추악한 욕망, 자연을 기꺼이 파괴하며 발전해 나가는 기술, 폭력과 전쟁, 이기심을 투영한다. 비약이나 성별을 나누려는 다른 음침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미야자키 할아부지가 진짜 그렇게 연출을 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영화 몇 편만 떠올려도 답이 나온다. 그의 작품에서 본인만의 그럴듯한 사정 없이 욕망에 취해 침략이나 전쟁, 약탈을 일삼는 인물을 떠올리려 하면 십중팔구 대부분은 남성이 맞다. 하다못해 잠깐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는 역할이어도 그렇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국왕만 해도ㅋ)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리는 여성 빌런들은 대부분 주인공(소녀)에게 감화되어 나중에는 선한 역이 되거나, 원령공주의 에보시같이 약자들을 지키기 위해 악역이라 불릴만한 자리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오히려 거기에서도 진짜 빌런은 사슴 신 목을 돈벌이 하겠답시고 들고 튄 지코보나 다름없었으니까.(ㅋㅋ) 미야자키 하야오는 늘… 그렇긴 했지만, 특히나 옛날 작품에서는 거의 대놓고 저런 인물들을 내세워서 대립시키며 제발 전쟁 좀 그만하고 무식하게 싸우지 말고 자연 파괴도 그만하고 친환경적으로 다같이 동식물과 더불어 살자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참 좋음. 나도 인간이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친환경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그런걸까. 모쪼록 미야자키 하야오가 죽는 날까지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할아부지 화이팅!


    말이 좀 샜는데 아무튼 다시 라퓨타 이야기로 돌아가서 저 공식을 대입해 보자면 하늘이(라퓨타) 아닌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 말하는 주인공 시타와 라퓨타를 손에 넣어 다시 한번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어 지배하고야 말겠다는 무스카가 대립한다. 공교롭게도 둘 다 멸망한 라퓨타 왕족의 후손이다. 정당한 권리와 능력을 지닌 두 인물을 대립시키다가 끝에서는 결국 늘 그랬듯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는 캐릭터인 무스카가 처절하게 패배한다. 무스카는 시력을 잃고 시타와 파즈가 함께 멸망시킨 라퓨타의 잔해와 함께 추락했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날개가 녹아 추락한 이카로스 같은 꼴이다. 영화 내에서 라퓨타가 지닌 의미를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어떤 이에겐 꿈이고 어떤 이에겐 부와 명예 권력. 말 그대로 욕망을 실현시켜줄 꿈같은 도시. 걸리버 여행기의 라퓨타. 유토피아. 바빌론. 엘도라도. 자연스레 그런 것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였으니까. 라퓨타의 말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아마도 병기였을)거대한 요새가 모두 추락해 바다로 수장된다. 그 거대한 도시를 지탱하고 있던 나무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평온한 자연만이 남아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을 곳으로 아주 멀리 멀어져갔다. 참 마음에 드는 엔딩이다.


    너무 동화같이 틀에 박힌 권선징악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싫어할 수 없는 결말이다. 앞으로도 가끔 생각나면 종종 보게 되겠지. 아마 볼 때마다 오늘처럼 향수를 느끼고 한편으로는 참 좋은 이야기였다는 감상을 늘어놓을 것이다. 참, 추억이 한 바가지 묻어있는 영화를 같이 즐겁게 봐준 오리에게도 고맙다ㅎ 오랜만에 좋아하는 걸 가까운 사람과 나누면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져서 정말 즐거웠다!



    +)깨알같이 묘사된 입체감 있는 캐릭터성도 좋았다. 가령 시타를 무스카에게 넘기고(자의는 아니었지만) 받아온 금화를 땅에 내던지려다가 자신이 처한 현실에(아마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처지겠지. 어린 광부가 벌면 얼마나 벌겠어ㅠ) 차마 던지지 못하고 손에 쥔 채로 터덜터덜 돌아가던 파즈의 모습이라든지ㅋㅋ


    +) 지금이야 흔하지만 영화가 개봉한 연도를 생각하면 굉장히 진보적인 캐릭터, 대사, 연출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해적단 우두머리 도라가 특히. 호쾌하고 호전적인 노파라는 점도 그렇고, 여자는 배짱이라고 외치는 대사도 그렇고.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아했던 캐릭터라 오늘 다시 보면서도 도라가 제일 반가웠다. 내 멋있는 해적 할머니ㅠ